앞에서 준정적 과정이란 피스톤의 운동이 충분히 느려서 기체계가 항상 평형상태에 존재한다고 취급할 수 있는 과정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과학적으로는 그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귀절이 "충분히 느려서"라는 부분이다.
무엇에 비해서 충분히 느리다는 것인지 밝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별로 권장할 만한 서술이 되지 못한다.다행히 이 경우에는 비교 대상이 분명하다. 계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평균속도를 veq 라 하자. 피스톤의 운동 속도 vp 가 veq 보다 훨씬 작다면, "충분히 느린" 운동의 조건을 만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계가 veq 보다 훨씬 큰 속도 vp로 팽창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입자들은 피스톤의 운동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피스톤의 원래 위치 안쪽에 그대로 있다가 뒤늦게 피스톤의 새 위치까지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자유 팽창(free expansion)이라고 한다. 이는 준정적 과정이 아니며, 양단 사이의 상태는 평형 상태가 아니므로 열역학적인 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계가 역학적인 일을 할 대상도 없고, 계에 가해진 변화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나서 그 동안 열량의 교환이 거의 없다. 이는 즉, 계의 구성 입자의 내부에너지에 변화가 없음을 뜻한다. 내부에너지에 변화가 없으므로 이상 기체계의 온도도 변화하지 않는다.
카르노 기관에서는 등온 과정과 단열 과정을 사용한다. 등온 과정에서 계는 열저수지와 열접촉하면서 열에너지를 흡수 또는 방출한다. 이 과정은 준정적과정의 정의에 부합되어야 한다. 즉, 계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피스톤의 운동 속도 vp 가 veq 보다 훨씬 작다면, 계는 항상 평형 상태에 존재하게 된다. 표준 상태(1 기압, 273 K)에서 산소 분자의 속도는 대략 500 m/s 정도이므로 피스톤이 이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면 준정적 과정의 요건에 부합한다.
그런데 계와 열저수지 사이의 열 교환은 이보다 훨씬 느리게 일어난다. 즉, 계의 열평형에 걸리는 시간은 계의 운동학적 평형에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계는 원래 평형상태에 존재하지만 피스톤의 위치가 천천히 변화하면서 온도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이에 따라 열 교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 열교환의 속도는 실린더의 재질이나 구조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열교환은 일사불란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기체 분자가 열교환이 일어나는 벽에 충돌할 때, 반드시 에너지를 얻으면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를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면서 충돌하지만, 여러번 충돌한 후에는 평균적으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준정적 과정에 속하는 경우를 두 개의 극단적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즉, (1) 열교환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만큼 피스톤의 운동이 느린 경우와 (2) 열교환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피스톤의 운동이 빠른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경우 공히 피스톤의 운동은 준정적 과정의 요구를 만족할 만큼 느리다.
(1)의 경우는 등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계는 열접촉 중인 열저수지의 온도와 항상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 이때
(2)의 경우는 단열과정이다. 계와 열저수지의 열교환은 무시할 만하다. 즉,
단원자 분자 기체라면,
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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